고분이란

일본에서는 3세기 후반부터 약 400년 동안,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만든 분구를 갖는 묘(분묘)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분구를 갖는 묘를 “고분”이라 하며 고분은 당시의 신분이 높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고분의 분구 주변에 흙을 판 부분에 물을 담아 해자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또, 분구의 경사면에는 이음돌(즙석)을 둘러 놓은 것도 있는데 장식이나 분구의 붕괴를 방지하는 것 등이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분구가 2단・3단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해자가 2중・3중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형태도 위에서 봤을 때 열쇠 구멍 형태를 한 “전방후원분”, 원형의 “원분”이나 사각형의 “방분” 등 그 형태가 다양하고, 크기도 10m정도에서 400m를 넘는 거대한 고분까지 크기도 다양합니다.
전방후원분의 분구 및 매장 시설의 구조(복원도) 전방후원분의 분구 및 매장 시설의 구조(복원도)
원통 토용원통 토용(고뵤야마 고분 출토)
대형 전방후원분의 대부분은 분구나 제방 위에 “하니와(토용)*”가 둘러 세워져 있습니다.
또, 분구 내부에는 매장 시설이 있으며 부장품이 함께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매장품을 통해 피장자의 생전 재력과 권력 등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분은 무덤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고분이 지어진 시대를 “고분시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니와란・・・  점토를 구워 만든 토제품으로, 가장 수가 많은 것은 원통 모양의 “원통 하니와”입니다.
원통 하니와의 특징이 분구의 형태나 매장 시설의 구조, 부장품의 종류와 함께 고분의 대략적인 축조 시기를 밝히는 단서가 됩니다.

칼럼고분의 각 부분 명칭을 알아 보자!

전방후원분의 모델
※고분의 형태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은 경우에는여러 가지의 고분 형태 를 확인 바랍니다.

칼럼역사적 배경을 통해 살펴 보자

야요이 시대에 수전 벼농사 농경 시대가 시작됨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수렵・채취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 변화합니다. 이러한 생활변화로 인해 각지에서 수전을 중심으로 하는 촌락이 성립되고 그것들이 점차적으로 통합되어、1차적인 “쿠니(국가)”로 불리는 정치적 집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중기에는 이러한 정치 집단의 수장들에 의해 분묘가 만들어지게 되고, 야요이 시대의 후기 후반・ 2세기 후반에는 각지에서 특색이 있는 분구묘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각지의 분구묘를 바탕으로 지역을 초월하여 획일적인 “고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 “고분시대”입니다.
고분시대 전기의 대형 고분은 분구의 형태와 매장 시설의 구조, 부장품의 조합 등이 매우 획일적이며, 긴키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규슈로부터 동쪽은 간토・동북 남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일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고분의 출현은 광역의 수장 연합의 성립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